[타악한인터뷰] Ep.5 베이시스트김대호

《타악한 인터뷰》는 리듬에 진심인 서울드럼페스티벌 전속 기자 ‘드숭이’가 리듬감 만렙인 아티스트의 음악과 인생에 녹아든 고유한 리듬을 파헤치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안녕? 나 드숭이. 오늘은 묵직한 리듬을 품은 베이시스트 김대호를 만나고 왔어.
콘트라베이스를 본 적이 있니? 서양 악기 중 가장 크기가 크고 가장 낮은 음을 내는 현악기야. 대호는 이 콘트라베이스를 15년 넘게 연주하며 동료 뮤지션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왔는데…글쎄, 작년에 드디어 리더로서 첫 앨범을 발매했다고 해! 베이스는 존재감이 없다고? 삶이 퍽퍽할 때도 매 순간의 호흡을 소중히 여기는 대호의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앞으로 베이스가 눈에서 밟히게 될 거야. 이번 서드페 무대도 놓치면 손해일걸? 나 드숭이가 장담함.❞

안녕. 나는 서드페 인턴기자 드숭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요즘 뭐 하면서 지내고 있었어?
안녕, 드숭아. 나는 베이스 치는 김대호라고 해.
작년 11월에 <TOUGH LIFE>라는 첫 리더작 앨범을 발매했거든. 그래서 앨범 활동과 기존에 하던 사이드맨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살고 있었어.
베이스 연주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야?
베이스를 접하게 된 건 교회 찬양팀에서였어. 어렸을 때 교회를 되게 열심히 다녔거든.
처음엔 기타를 배우고 싶어서 교회 아는 형한테 기타 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A코드를 한번 잡아보라고 하더라고. 기타 프렛 한 칸에 손가락 3개가 들어가야 하는데, 내 손가락이 두꺼우니까 안 들어가는 거야. 형이 그걸 보더니 “야, 너 그러면 그냥 베이스나 쳐” 그러길래 “그럴까요? 알겠어요” 하면서 시작하게 됐지.
베이스의 매력은 언제 깨닫게 됐어?
베이스를 전공하겠다고 결정한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아. 고3 때 본격적으로 입시 준비를 하면서 실용음악과에 가야겠다는 결심이 생겼거든. 유명한 베이스 연주자들을 찾아 듣다 보니까 ‘베이스는 보여주거나 들려줄 수 있는 좋은 소리가 꽤 많은 악기구나’, ‘되게 매력 있는 악기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럼 콘트라베이스는 언제부터 연주하게 된 거야?
대학교 1학년 때 친해진 3~4명의 친구들이 전통적인 재즈를 좋아하고 연주하는 애들이어서 같이 어울리면서 잼을 하곤 했어. 걔들이 ‘너 재즈하려면 콘트라베이스 해야 돼’, ‘일렉베이스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나를 가스라이팅했지. 그래서 악기를 구해 연습하다가 전역 후에는 거의 악기를 바꾸듯 콘트라베이스로 연주하게 된 것 같네.
콘트라베이스에는 프렛이 없어서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
|힘들고 신기했지. 학교에서 콘트라베이스 치는 형한테 도대체 음정을 어떻게 맞추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어. 그런데 그 형이 ‘그냥 하면 돼, 연습하다 보면 될 거야’ 하고 말하길래 그때부터 거울 보고 열심히 연습했었던 것 같아.

일렉베이스는 ‘존재감이 없다’, ‘안 들린다’ 같은 밈이 있지만 콘트라베이스는 덩치가 커서 존재감이 상당할 것 같거든.
재즈에서 콘트라베이스는 어떤 역할을 해?
기본적으로는 일렉베이스가 하는 역할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
리듬적인 역할을 하면서 드러머의 파트너가 되는 거지. 기타리스트나 피아니스트들이 화성적으로 음악에 색을 입혀준다면, 베이시스트는 그 밑에서 화성의 기초가 되어준다고 보면 되고.
콘트라베이스가 일렉베이스보다는 덩치가 크고, 보통 무대 가운데 서 있는 경우가 많잖아. 사람들이 와서 ‘저 큰 바이올린은 뭐냐’, ‘첼로 아니냐’ 이런 질문들을 하면 속으로 눈물을 삼키면서 “베이스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지.
베이시스트에게는 항상 조금의 서러움이 있구나. 악기도 되게 크고 무겁잖아.
가구 들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어서 조금 서럽긴 하지.
<노다메 칸타빌레> 같은 애니메이션에도 체구 작은 여성이 등 뒤에 베이스를 군장처럼 힘들게 메고 다니는 장면이 나오는데, 사실 여성 베이시스트도 많아. 그렇지만 아마 그분들도 베이스 들고 다니는 건 힘드실 거야.
연주할 때도 힘이 필요해?
악기 자체가 크다 보니까 일렉베이스랑 대조했을 때 힘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아.
그리고 악기 세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들여야 하는 힘도 많이 달라지는 편이야. 세팅을 터프하게 한다면 진짜 힘을 키워야 연주가 가능해지는 거고, 세팅을 조금 편안하게 한다면 힘을 덜 들이고 칠 수 있게 돼.
세팅 값에 따라서 나오는 소리도 달라지나?
맞아. 소리가 많이 달라져. 클래식에서는 줄을 활로 긁어 연주한다면, 재즈에서는 줄을 튕겨서 소리를 내는 거잖아.줄 종류랑 높이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기도 해. 줄이 높아지면 악기 통에서 나오는 배음 같은 게 더 많이 실려서 ‘동’, ‘벙’ 하는 통소리, 배음이 더 많이 들어가. 반대로 줄을 지판 가까이에서 튕기면 줄이 떨리는 소리가 많이 들어가서 프렛리스 베이스랑 비슷한 소리가 나게 되지.
그럼 대호는 어떤 세팅을 선호해? 곡마다 세팅을 바꾸는 것도 가능해?
사실 곡마다 세팅을 바꾸기는 어려워. 만들어진 지 오래된 악기니까 스스로 조정할 수 없는 부분도 있어서 거하게 바꾸려면 항상 악기샵에 가져가야 하고, 다 돈이 드니까 크게 바꾸지는 않아. 취향에 따라 세팅하는 방식도 달라지는데, 나는 예전에 줄을 낮게 쓰는 연주자들을 좋아해서 비슷하게 세팅했었어. 그분들이 보통 손을 빨리 움직이시고, 베이스가 되게 돋보이는 연주를 하시니까 멋있어서 따라 해 보고 싶었거든. 그런데 요새는 취향이 50, 60년대 음악으로 바뀌었어. 날 것 같으면서도 풍부한 베이스 음색이 되게 매력 있게 들리더라고. 그래서 통소리가 적당히 나는 정도로 연주하면서 타협하고 있는 것 같네.

서울드럼페스티벌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 어땠어?
’나는 드러머가 아닌데 왜 나한테 연락을 했지?’ 이런 생각을 하진 않았어?
정확히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사실 영광이야.‘드럼’ 페스티벌이지만 이제 더 폭넓게, 리듬이나 사운드 자체에도 관심을 가져주시는구나 싶었지.
이번 서드페에서는 어떤 무대를 준비하고 있어?
색소폰, 피아노, 베이스, 드럼. 이렇게 4인조 구성으로 준비했어.
나랑 연주 성향이 되게 잘 맞는, 편한 분들을 섭외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 페스티벌을 위한 프로젝트 밴드가 되겠네.
어떤 사운드를 선보일지 많이 고민하다가, 다양한 재즈 사운드를 들려드리고 싶어서 이 페스티벌을 위한 곡을 써보고 있어.
전부 미발매 곡이기 때문에 직접 와야 들을 수 있어. 많이들 와줬으면 좋겠다.
베이스랑 드럼은 리듬적으로 가장 가까운 파트너잖아.
어떤 드러머랑 연주할 때 희열을 느끼는 편이야?
돌이켜 봤을 때 나는 연주할 때 흥이나 신이 나는 감정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래서 사람을 춤추게 만드는 듯한 연주자분들하고 작업, 연주할 때 큰 희열을 느껴. 이번 서드페 무대에서 같이 연주할 김민찬 씨도 그런 희열을 느끼게 해 주는 연주자라고 생각해. 나랑 같은 학교 출신에 학번도 가까워서 오래 본 인연이기도 하고.

15년 동안 사이드맨으로서 활동하다가 작년에 첫 정규 앨범 <TOUGH LIFE>를 발매했잖아.
지금 이 시점에 리더작을 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어?
“나 이제 앨범 낼 거다”라고 말한 지 10년이 넘어서 주변 사람들이 ‘너 어차피 안 할 거잖아’ 하면서 놀리는 지경까지 갔었거든. 그런데 완전히 결심이 서게 된 건 이번 앨범 녹음을 같이해 주신 드러머 루이스 내쉬 덕이야.
재즈 신에서 전설적인 드러머이신데, 재작년에 한국에 오셨을 때 같이 연주도 해보고 공연도 보러 가면서 말을 섞을 기회가 있었어. 그분이 한국에 다시 올 것 같다고 하시길래, ‘준비를 해둘 테니 그때 같이 녹음해 줄 수 있냐’ 여쭤봤는데 되게 흔쾌히 승낙하셨어. 이후로 연락을 자주 주고받진 않았지만 계속 안부를 물으면서 지냈지. 그러다 작년 여름에 그 분이 다시 한국에서 공연을 여시게 됐고, 공연을 주관하는 프로모터 분이 ‘루이스가 녹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던데, 혹시 할 생각이 있냐’고 말씀하시길래 내가 살면서 또 언제 이 분이랑 녹음할 수 있겠냐는 생각에 바로 하겠다고 했지. 그렇게 앨범을 준비하게 됐어.
그래서인지 앨범을 들으면서 드럼이 돋보인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아.
사실 베이시스트 앨범이라고 하면 베이스 솔로를 많이 하거나, 베이스가 좀 돋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흔히 할 것 같아. 나에게도 그런 부담감이 있었지. 그런데 막상 대가랑 녹음하다 보니 조금 쫄아서 솔로 연주를 잘 못 하겠더라고. 그래서 솔로 연주는 많이 안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앨범에 실었지.
또 한 편으론 사이드맨을 15년 정도 하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같이 연주하는 사람에게 맞춰주는 태도가 생겼고, 이번 앨범을 제작할 때도 드러머분이 뭘 좋아하실지 고민하게 됐거든. 그래서 드럼이 돋보이는 것처럼 들릴 수 있을 것 같아.
갑작스럽게 앨범을 준비하게 된 거였는데, 원래 작업해둔 곡들이 좀 있었어?
일단 녹음 여부가 거의 녹음 3주 전에 결정됐고, 완전 급하게 작업해야 했던 상황이었어. 10년 전에 썼던 건 아니지만 내가 필요해서 써놓은 곡들이 조금 있어서 그중 몇 곡을 가져오기도 했지. 녹음이 결정되고 나선 발등에 불 떨어져서 매일 곡 작업을 했는데, 녹음 전날까지 뭐가 잘 안되더라고. 그래서 진짜 거의 녹음 직전까지 써서 가져간 곡도 있어. 재즈 연주자들은 예전 뮤지컬 넘버 같은 곡들을 가져와서 연주하기도 하거든. 흔히 ‘스탠다드’라고 하는데, 곡이 너무 안 나오니까 ‘나머지 곡들은 스탠다드 가져가서 채우자’ 이렇게 생각하게 됐지. 쉽진 않았어.
첫 앨범이라 작업하면서 스스로 느낀 점도 많았을 것 같아.
연주자 유형을 크게 나눈다면 두 가지일 것 같은데, 하나는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연주자고, 하나는 자기 검열이 너무 심한 연주자야. 난 후자에 속하고 항상 내 연주가 아쉽거든. 그럼에도 1집 작업이 재밌었던 덕분에 앨범 작업을 또 해보고 싶고,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 부족한 건 내 연주겠지. 연습도 더 하고 곡도 써보면서 조금이라도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해서 다음 작품을 해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야.

그런데 <TOUGH LIFE>라는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된 거야?
재즈 뮤지션들이 곡을 쓰는 방식 중 ‘콘트라팩트’라는 게 있는데, 기존의 스탠다드 곡 코드 진행에 새로운 멜로디를 쓰는 작곡 방식이야. ‘TOUGH LIFE’는 ‘Easy Living’이라는 스탠다드를 가져와 콘트라팩트로 쓴 곡인데, 코드 진행이 삼천포로 가서 조금 다른 곡이 돼버렸거든. 원곡과 반대되는 제목으로 써보면 어떨까 싶었고, 바로 ‘TOUGH LIFE’가 떠오르더라고.
이 곡을 쓸 때 삶이 좀 퍽퍽했던 것 같아. 지금도 그렇긴 한데… 곡 작업이나 연주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항상 편의점에 들러 4캔에 1만 원 하는 수입 맥주를 사 마시곤 했거든. 곡을 쓰다 보니 그런 장면들이 연상되더라고. 나름 그런 의미를 부여하면서 완성했고, 제일 애착이 가는 곡이지.
드숭이가 앨범을 들어보니까, 실수한 것 같은 테이크들도 그대로 담겨 있더라고. 일부러 살린 이유가 있었어?
일단 녹음 환경의 영향이 컸어. 모든 악기 파트가 나뉘어서 소스를 따로 받을 수 있다면 실수가 있어도 수정을 할 수 있는데, 앨범 녹음을 진행한 스튜디오가 피아노, 드럼, 베이스가 한 방에 들어가는 구조라 수정하기가 어려웠어. 셋이서 다시 연주하는 게 아니라면 고칠 수 없는 상황인데, 내가 틀려서 대선배님께 ‘이것 좀 고쳐주십시오’ 부탁하기가 좀 그렇잖아.|
또, 옛날 재즈 음반 중엔 녹음 현장을 남기고 싶어서 그런지 말소리나 실수를 그대로 실어버린 경우가 왕왕 있거든. 나도 녹음 파일들을 모니터링하면서 녹음 현장이 되게 많이 떠오르더라고. 그래서 ‘실수들을 그대로 남기고 들으면 녹음 당시 생각이 더 많이 나지 않을까’ 싶어서 살리기로 결정했지.
‘재즈에서 틀린 음이라는 건 없다’라는 말도 있잖아.
실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재즈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겠네.
틀린 음이 있을 수도 있긴 해. (웃음) 재즈의 정신보단 아티스트 성향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완벽을 추구하시는 분들은 리허설도 여러 번 하고,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은 고쳐가면서 완벽한 작품을 만드셔. 나 같은 경우엔 완벽주의는 있지만 너무 게을러서, 틀리는 모습도 내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 실수를 드러내는 것에서 다른 분들보다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적은 것 같아. 그래서 녹음 중 나온 실수들을 이렇게 쉽게 내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한국에서 재즈 연주자로 먹고사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 계속 연주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뭐였어?
불과 5~6년 전만 해도 음악 취향이 모호했던 것 같은데 나름 나이도 먹고, 음악을 오래 하면서 ‘재즈라는 음악이 되게 매력이 있고, 연주자로 먹고살기 힘들어도 평생 할 만한 직업이겠구나’라는 확신이 2~3년 전부터는 계속 들었어. 그래서 특별히 내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갑자기 집안이 풍비박산 하는 게 아니면, 가능하다면 이 직업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고 싶지.
오랫동안 재즈 씬에서 활동하면서 변화도 많이 느꼈을 것 같아.
일단 젊고 잘하는 연주자들이 너무 많이 나오고 있어. 이렇게 말하니 내가 되게 늙은 것 같지만 씬 자체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 탓인진 모르겠지만 코로나 전후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고 느끼거든. 코로나 이후엔 재즈처럼 마이너한, 비주류의 것들을 소비하거나 덕질하는 게 크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게 됐고,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게 자연스러운 세상이 왔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관객분들도 마이너한 음악이라도 공연장에 찾아가 들어보는 경우가 늘지 않았나 싶고, 연주자로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
드숭이도 요즘 재즈에 푹 빠졌거든. 대호가 좋아하는 재즈 아티스트도 궁금해.
너무 많은데… 베이시스트 중엔 폴 챔버스, 레이 브라운, 론 카터를 좋아해. 피아니스트는 빌 에반스를 굉장히 좋아해 왔어. 서드페 인터뷰니까 드러머도 꼽아보자면, 요새 엘빈 존스의 연주를 많이 들어보고 있어. 재즈사에서 의미 있는 연주자이고 되게 멋있게 연주하셔.
대호도 처음 음악을 시작했을 때, 좋아하는 연주자들을 보며 꿈꾸던 모습이 있었을 것 같아.
지금은 그 꿈에 얼마나 가까워졌다고 느껴?
일렉 베이시스트 중에 자코 파스토리우스라는 전설적인 분이 계신데, 요절한 비운의 천재 느낌이야. 일렉베이스를 먼저 시작한 나한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고, 처음엔 이 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내가 나름 슈퍼스타나, 잘 나가서 돈 걱정 안 하는 A급 사이드맨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거든. 일종의 ‘어렸을 때 꿈’이니까 너무 비웃지 말아 줘.
그런데 좋아하는 음악도 달라지고, 흔히 말하는 ‘전통적인 재즈’ 씬에 안착해 업으로 삼다 보니까 내가 꿈꾸는 것만큼 올라갈 수 없고 삶을 돌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지. 다만 이 씬에서 어느 정도 인정도 받고, 연주자분들이 나를 좋아해 주시는 게 감사해서 ‘계속 연주자 생활을 잘 유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야. 70, 80살 때까지는 음악을, 연주를 최대한 많이 하고 싶다는 꿈이랑 목표를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이건 변하지 않는 것 같아.

그럼 대호는 스스로 어떤 베이시스트라고 생각해?
나는 순간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음악이 나올 수 있게 노력하는 연주자인 것 같아.
사이드맨 활동에 리더 활동까지, 올해 정말 바쁜 한 해가 되겠네.
감사하게도 아직 불러주시는 곳이 있으니 사이드맨 활동을 열심히 할 거고, 하반기엔 <TOUGH LIFE>로 프로젝트 두세 개가 더 잡혀 있어서 그걸로 리더 활동을 할 것 같아. 리더든 사이드맨이든 올해도 연주를 계속하지 않을까 싶어.
이제 마지막 질문이야. 오늘 드숭이랑 같이 한 인터뷰 어땠어?
너무 좋았고, 인터뷰하면서 내가 생각보다 떠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어. 이야기하다 보니까 과거 경험과 생각 정리도 돼서 너무 뜻깊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 고마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