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악한인터뷰 Ep.4 삼산

헤드 에디터 : 전민제 편집장
에디터 : 공미정 / 권오윤 / 박송이 / 정혜린
촬영 : 이동훈
인터뷰 : 드숭이
《타악한 인터뷰》는 리듬에 진심인 서울드럼페스티벌 전속 기자 ‘드숭이’가 리듬감 만렙인 아티스트의 음악과 인생에 녹아든 고유한 리듬을 파헤치는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안녕? 지난한 인턴 시절을 끝내고 드디어 서드페의 정식 기자가 된 드숭이야.
오랜만에 돌아온 만큼, 범상치 않은 뮤지션을 만나 인생 속 쫀쫀한 리듬 이야기를 나누고 왔어. 그의 이름은 ‘삼산’.가야금과 해금을 안고 무대에 올라 상큼한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은 한 번 보면 잊기 어렵지. 진솔한 가사로 “우리 모두 어차피 죽는다”며 ✌ 핵심을 ✌ 찌르고, 다양한 리듬을 씩씩하게 탐구하는 삼산을 단번에 ‘퓨전국악 아티스트’라고 규정하기엔 한참 아쉬워. 삼산만의 통통 튀는 리듬을 들여다볼래? 그전에 마음 단단히 먹어. 곧 삼산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EㅔLㅣ…★❞

안녕. 나는 서드페 인턴기자 드숭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요즘 뭐 하면서 지내고 있었어?
안녕, 드숭아. 나는 삼산이라고 해.
최근에는 작업실에서 작업하고, 앨범도 만들면서 서울드럼페스티벌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어.
‘삼산’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됐어?
사실 이 이름을 이렇게까지 오래 사용할 줄 모르고 되게 간단하게 지었었다?
어떤 대회를 나갔을 때 활동명으로 이름 말고 뭘 쓸까 고민했는데, 조선시대에 성공한, 벼슬하던 사람들이 다 고향에서 호를 가져오는 거야. 그래서 ‘나도 고향에서 이름을 따와야겠다’ 생각했어. 우리 집이 삼산면에 있거든. 그래서 삼산이 됐어.
그런데 사람들이 발음을 되게 헷갈려 해서 삼산 말고 ‘산삼’으로 많이 불렸었지.
국악 음악을 한다고 들었어. 국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야?
내 생각인데, 지방에서는 국악을 들을 기회가 수도권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아.
부모님이 국악을 되게 좋아하셔서 자연스럽게 국악을 들으면서 자랐고, 초등학생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가야금이라는 악기를 접했는데 소리가 되게 예뻐서 그때부터 시작하게 됐어.
꼬마 삼산이 국악의 정서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아.
어린 시절 접했던 국악의 첫인상은 어땠어?
사실 그땐 나도 국악이 재미없었던 것 같아. 음악이라는 게 배우는 단계에서는 재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해.
게다가 국악은 나이가 들어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하거든.
어릴 때는 인정 욕구가 좀 많았어서 그냥 누가 시키는 것들을 열심히 했고, 20대 후반에 다 와서야 국악에 재미를 느끼고 이 음악을 진짜 내 것처럼 만들기 시작한 것 같아.

드숭이가 조사를 좀 했는데 국악고에서 해금을 전공하고 한예종 작곡과에 진학했다며? 보통의 국악 전공자들과는 다른 길을 간 건데, 새로운 시작이 두렵지는 않았어?
엄청 두려웠지. 뭐랄까, 어릴 때부터 인생에 알게 모르게 자잘한 실패나 변화가 많았거든.
20대 중반까지는 남들에 비해 내 인생이 순탄치 않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런 경험을 어릴 때 해본 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그러다 작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상’에 노미네이트됐잖아.
국악 씬에서 대중음악 씬으로 넘어온 지 2년 정도 됐던 차였는데, 그때는 한대음의 진정한 가치를 잘 몰랐던 것 같아.
물론 되게 명망 있는 상이고 노미네이트가 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는 건 조금은 알고 있었어. 그렇지만 시상식이 지나고 나서 사람들이 한대음 이야기를 하고, 나도 한대음에 대해 알아가면서 이게 엄청나게 좋은 기회였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같아.
그래서 오히려 나중에서야 감사하다는 생각이 더 들었어.
삼산면의 자랑일 것 같은데 고향 어르신들 반응은 어때?
사실 아직은 삼산면 사람들보다 서울 사람들이 나를 더 많이 아는 것 같아.
삼산면에는 아무래도 우리 부모님 세대, 아니면 훨씬 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이 미디어를 즐겨보시거나 음악을 즐겨들으시지는 않거든. 나를 아시는 고향분들은 나를 되게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 ‘더 열심히 해서 삼산면의 모두가 다 나를 알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지.
고향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 같은데,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
시골 친구들이 이런 생각을 많이 할 텐데, 나는 어릴 때 필사적으로 도시에 가고 싶었거든.
서울은 재밌는 지옥이고 삼산면같이 깊은 시골은 지루한 천국이라고 생각해.
성향상 나는 재밌는 지옥이 더 잘 맞는 것 같아서 아마 꾸준히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어.
고향 해남과 서울이라는 도시는 삼산에게 서로 다른 음악적 영감을 줄 것 같아.
곡을 쓸 때 환경의 변화에 영향받는 편이야?
영향을 받는 것 같긴 해. 서울에 있다가 가끔 해남에 내려갈 때 확실히 공간이 분리된다는 걸 느끼거든.
내가 자라온 곳은 숲도, 나무도, 바다도 많은데, 그런 자연의 감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에 올라오게 된 거잖아.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될 때 두 장소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공간의 차이를 체감하는 것 같아.
음악을 쓸 때도 정적인 사운드에 대한 영감을 얻고 싶으면 해남에 가서 생각해 보기도 해. 서울에 있으면 아무래도 현대인이나 동시대성 같은 것들을 생각하기가 좋고.

서울드럼페스티벌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 어땠어?
’전화 잘못 건 거 아니야? 왜 나한테 연락했지?’ 이런 생각을 하진 않았어?
맞아. 처음 연락받았을 때는 “어디시라고요?” 이랬던 것 같아.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서드페를 ‘드럼과 타악기들을 되게 많이 볼 수 있는 공연’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번에 나를 불러주신 데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되게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
삼산이 연주하는 국악기에 타악기적 요소도 있어?
응.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국악, 한국 전통 음악은 화성보다는 단선*과 리듬의 조합이거든.
그래서 내가 음악에 조금 더 리듬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 ‘리듬이라는 공통점으로 봤을 때 (국악에) 다른 음악들과 재미있게 엮어볼 구석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
*단선(율): 하나의 성부로 이루어지는 선율
이번 서드페에선 어떤 무대를 준비하고 있어?
서울드럼페스티벌인 만큼 리듬적인 재미를 생각하고 오시는 관객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분들께 내 음악이 가진 리듬을 어떻게 재미있게 전달할지 많이 고민했어. 그래서 다른 데서 잘 보여드리지 않았던 편성으로 공연하지 않을까 싶어.
국악이 가지고 있는 리듬은 대중음악의 리듬과 조금 다를 것 같아.
케이팝이나 가요처럼 우리가 흔히 아는 음악들은 2박자 계열인데, 국악은 3박자 계열이 한 박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울 때도 2박 계열 음악은 보통 ‘딴딴딴딴(V v v v)’ 체크 표시처럼 생긴 기호로 배우잖아. 국악은 ‘핫 둘 셋, 핫 둘 셋(O o o / O o o)’, 동그라미에 가까워.
고향에 대한 애정이 되게 깊은 것 같은데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근데 내가 보통 이제 시골 친구들이 그런 생각을 많이 할 텐데 어릴 때 약간 필사적으로 도시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나는 왜냐하면 서울은 재밌는 지옥이라고 생각하고 해남이나 이렇게 삼산면 같이 좀 깊은 시골은 지루한 천국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한테는 내 성향상 나는 재밌는 지옥이 더 잘 맞는 것 같아.
그래서 아마 꾸준히 여기 있지 않을까 싶어. 응
고향 해남과 서울이라는 도시가 각각 삼산에게 어떤 음악적으로도 되게 영감을 줄 것 같아.
이런 환경의 변화가 곡을 쓸 때도 영향을 주기도 해?
응 그런 거 같긴 해. 왜냐면 내가 서울에 있다가 가끔씩 해남에 내려갈 때 공간이 확실히 좀 분리된다는 걸 느껴.
그래서 내가 자라온 곳은 어쨌든 되게 숲이 많고 어쨌든 나무도 많고 바다도 많고 이런 곳에 감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약간 이렇게 되게 뭐가 빨리 움직이는 도시에 올라오게 된 거니까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서 뭔가 고민이 될 때 그 두 장소를 왔다 갔다 하면서 더 뭔가 체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음악을 쓸 때도 뭔가 좀 그런 조용하기도 하면서 약간 정적인 사운드에 대한 걸 얻고 싶으면 해남에 가서 약간 좀 생각해 보는 것 같아.
그리고 서울에 있으면 아무래도 좀 현대인이나 동시대성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기가 되게 좋은 것 같아.

2개의 서로 다른 리듬 시스템이 충돌할 것 같은데… 어떻게 두 음악을 잘 버무리는 거야?
되게 어려울 것 같지만, 우리가 평소에 청국장도 먹고 불닭볶음면도 먹는 거랑 똑같다고 생각하거든.
어쨌든 나는 현대에서 자랐고 어릴 때부터 국악을 배웠기 때문에 현대의 리듬에도, 국악의 리듬에도 익숙한 사람인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음악적 이중 국적자,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교포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삼산의 음악에 대한 국악계의 반응은 어때?
이렇게 말하는 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나처럼 완전히 창작 국악으로 빠져나온 사람에게는 별로 큰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아. 국악 안에는 이미 너무 많은 갈래의 음악이 있어서 그 음악들을 향유하느라 바쁘신 것 같기도 해. 창작 국악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이 친구가 되게 재밌는 걸 하네’ 하고 알아봐 주시기도 하지만, 또래 친구들이 아니고서는 아직 나를 잘 모르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야.
약간 돌연변이 취급인 건가…?
맞아. 나는 경계 위에 있다고 생각해. 대중음악계에서는 나를 김덕수 선생님처럼 보는 시선이 있고, 국악계로 넘어가면 나를 국악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봐주실 때가 있거든.
하지만 두 씬 모두 나에게는 블루오션이야. 연차가 쌓이면 박쥐처럼 여기저기 갈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거든. 그래서 지금은 ‘그냥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어.
삼산의 노래는 가사도 되게 재미있어. 가사를 쓸 땐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
가사는 그냥 할 말이 명확할 때 써지는 것 같아.
곡을 혼자 방에서 즐길 게 아니라 남들 앞에 보여줄 거라면, 작사는 내가 다수의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전하고 싶은지 고민하곤 해.
가사에 의성어나 의태어를 되게 많이 쓰잖아. 빠샤뽀샤, 팽이팽팽같은 말들은 어떻게 생각해 내게 된 거야?
그런 말맛 나는 표현을 가사에 쓰게 된 계기가 있어?
이건 유전 같기도 해. 외할아버지도, 엄마도 의성어를 진짜 많이 쓰시는 편이라, 나도 자연스럽게 의성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가령 강아지 울음소리를 ‘밍밍’ 이러면서 되게 특이하게 표현하기도 했거든.
사실 삼산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자각하지 못했다? 내 친구들은 그냥 내가 그렇게 태어난 애인 줄 알고 딱히 말해주지 않았거든. 그런데 삼산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내가 의성어를 되게 많이 쓴다고 말해줘서 ‘아, 그렇네’ 하고 깨달았어.

가사에 내밀한 감정이나 고민, 솔직한 표현도 많이 쓰잖아.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는 편이야?
아니야. 처음엔 부끄러움이 있었고 어릴 때는 좀 심했던 것 같아. 그런데 요즘엔 ‘어차피 다 죽는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해. 내가 아무리 창피해도 나의 창피함을 아는 사람들은 결국엔 죽잖아. 모두가 이 지구에서 언젠가 사라질 거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제는 별로 부끄럽지 않은 것 같아.
예술가들이 슬프고 우울할 때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온다고들 하잖아.
기쁘고 행복할 때는 곡이 잘 안 써지기도 해?
맞아. 나도 부정적인 감정들에 가까워질 때 곡을 많이 쓰는 것 같아.
사실 기쁘고 행복할 때는 일기도 잘 안 써. 보통 ‘맛있었다’, ‘행복했다’ 이렇게 초등학생 같은 글밖에 안 써지거든. 우울이나 불행 근처의 감정에는 즐겁고 행복한 감정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것들이 쌓여 있어서, 곡을 쓰기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아.
보통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 편이야?
사실 나는 극강의 P 거든. 일어나서 밥 먹고 작업하거나… 그냥 그날그날 하고 싶은 걸 하는 것 같아.|
이번 주에 해야 할 일들을 큰 칠판에 쭉 써놓고 그때그때 제비뽑기하듯이 할 일들을 해결해.
음악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보통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내?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멀티태스킹이 나의 취미야.
모니터 화면 분할을 해서, OTT로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 놓고 퍼즐 게임을 푸는 걸 진짜 좋아하거든. 그렇게 한 6시간까지 한 적도 있어. 그런데 이러면 뇌가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대서 너는 안 하면 좋겠어.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
5월에 싱글이 하나 나올 예정이고, 내년에 정규 앨범을 내는 게 목표야. 그래서 올해 진짜 열심히 작업하려고.
어떤 방향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
모르겠어. 다른 뮤지션 분들도 그럴까? 나는 매일매일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어.
어제, 지난주까지는 ‘이런 방향으로 앨범을 가지고 가야지’ 생각했다가 오늘 눈 떠보면 되게 다른 것 같고 그래.
그래서 지금은 일단 재밌는 것을 만들려고 해. 내가 진짜 재미있어하는 것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쓰는 중이야.
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나 새로 도전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
원래도 비트감 있는 음악들을 좋아했었는데, 최근 취미로 디제잉을 하면서 전자 음악에 다시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아. 키라라 님을 포함해 여러 선생님과 해보고 싶은 게 되게 많지.

완전 새로운 음악이 나올 것 같아서 기대돼.
아티스트 삼산, 또는 인간 이해인으로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 나가고 싶은지도 궁금해.
나는 무병장수하고 싶어. 그런데 무병장수가 진짜 어려운 거 알아? 스트레스를 안 받아야 가능하잖아.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한 사람이 음악을 하는 것도 되게 어렵지만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흔히 음악가나 뮤지션을 떠올리면 술 되게 많이 마실 것 같고, 뭔가 정상인과 다른 범주의 삶을 살아야 특수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 그런데 평범하게 살면서도 자기만의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삶에서 제일 어렵고 멋진 단계라고 생각하거든. 건강해야 음악도 할 수 있고.
그래서 그냥 내 삶이 끝까지 건강하게, 무병장수로 음악을 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오늘 드숭이와의 인터뷰는 어땠어?
너무 너무 좋았어. 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이렇게 조그맣고 부드러운 원숭이, 부드러운 인터뷰어는 네가 처음이었거든.
그래서 인터뷰하면서 너를 이렇게 만질 수 있어서 좋았어.
